파버카스텔 :
역사
- 카스파르 파버 (1730-1784)
연필 생산업자들이 최초로 뉘렌베르그에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1660년대 즈음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타인의 장인들은 뉘렌베르그와 같이 엄격한 통제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연필 판매사업이 유리하였습니다.
캐비닛 제조업자였던 카스파르 파버도 이들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에 그는 무역업자들을 위해서 일하고 있었고 남은 시간에 연필을 생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연필을 생산하는 것이 곧 성공하게 되자 카스파르는 본인의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작은 규모로 시작된 사업이 이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게됩니다.
1785
- 안톤 빌헬름 파버 (1785-1819)
카스파르가 사망한 후, 그의 아들 안톤이 번창하고 있던 카스파르의 사업을 물려 받았습니다.
안톤은 스타인 경계지점에 공장과 함께 땅을 사들였고 몇 년 안에 그곳을 번성한 제조소로 만들었습니다. 이곳이 오늘날 파버카스텔의 본사 입니다. 안톤은 51세가 되던 해, 그의 외아들 게오르그에게 연필공장과 함께 회사를 넘겨 주었습니다.
1788
- 게오르그 레온하르트 파버 (1788 – 1839)
게오르그는 정치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회사를 운영하였습니다. 하지만 전통방식의 연필 제조법으로는 프랑스의 새로운 흑연제조법과 우수한 품질의 영국산 제품과 경쟁할 수 없었고, 사업은 쇠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타국에서의 다양하고 새로운 경험에 회사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생각한 그는 아들로타르와 요한을 런던과 파리로 보냈습니다. 몇 년 뒤 장남인 로타르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하여 스타인에 있는 공장을 국제적인 기업으로 일으켜 세웠습니다.
1839
- 로타르 폰 파버 (1817 – 1896)
1839년 아버지 게오르그가 사망하자, 22세에 귀국한 로타르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세계 최고의 품질을 개발하였습니다. 업계 최고가 되는 것을 목표로 세운 그는 공장을 현대화하였고 시베리아의 흑연광산에서 일등급 원자재를 확보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A.W.Faber” 라는 상표로 최고급 품질을 독점하였으며 이로써 최초로 필기도구의 브랜드화가 시작됩니다.
1851
- 1851 – 독일의 최초 유치원
로타르는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어린이들을 악영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유치원에 많은 투자를 하였으며, 직원들의 교육을 위해서 도서관 및 여러 교육기관에 많은 후원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1894
- 1894 – 뉴욕지사 오픈
1894년, A.W. Faber는 뉴욕 레드가에 큰 규모의 신규 지사를 개장하였습니다.
1896
- 빌헬름 폰 파버 (1851 – 1893)
로타르 파버의 외동아들인 빌헬름은 지정된 상속자였습니다. 그는 뉘렌베르그와 스위스에서 경영관리를 공부하였으며 1873년 회사의 일원이 되었고, 3년 후 회사의 책임자로 위임받았습니다. 그러나 빌헬름은 사업보다는 예술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이었고 그의 운명은 가혹했습니다.
그의아들로타르와 알프레드는 각각 3살과 4살이 되던 해에 목숨을 잃었고, 그 또한 어린 3명의 딸을 남긴 채 4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896년 로타르가 죽고나서 그의 미망인 오틸리에가 충직한 직원들과 함께 다음 세대까지 회사를 운영하게 됩니다.
1903
- 알렉산더 파버 카스텔 (1866-1928)
1898년 빌헬름의 장녀이자 차기 상속자인 오틸리에 폰파버는 알렉산더 카스텔 뤼덴하우젠 백작과 결혼하였습니다. 그로부터 2년 후, 1903년에 로타르의 부인이 사망하자 알렉산더는 회사 경영에 참여하였습니다. 같은 해에 독일 아르누보 스타일인 유겐트 양식의 독특한 기념비인 ‘뉴캐슬’을 위한 초석이 놓여졌습니다. 파버 카스텔은 알렉산더의 경영 하에 번창하였고, 유명한 녹색의 ‘카스텔 9000’ 연필과 말타는 중세기사 로고와 함께 더욱 현대적이고 기억에 남는 브랜드 이미지를 심어주었습니다.
1905
- 1905 – 카스텔 연필 시리즈
알렉산더는 회사의 대표가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쟁력있는 흑연심으로 ‘카스텔’ 이란 고급 연필을 만들었습니다. 이 고급 제품은 신규 제조과정을 통해 만들어졌으며, 연필의 경도 또한 매우 다양하였습니다. 백작의 연대기를 바탕으로 한 암녹색의 말을 탄 중세기사 로고는 파버카스텔사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1908
- 1908 – 폴리크로모스 전문가용 색연필
‘카스텔’ 연필의 탄생 직후, 더욱 큰 성공가도를 달렸던 ‘폴리크로모스’ 색연필이
시장에 선보여졌습니다. ‘폴리크로모스’ 색연필은 표준 수채색상에 맞춰 60색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몇 년 후 이 색연필은 미술가들에게 최고의 품질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세계적인 최고급 품질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1928
- 백작 롤란드 폰 파버 카스텔 (1905 – 1978)
1928년 알렉산더의 사망 후, 그의 아들인 롤란드가 회사의 대표가 되었고, 1932년 파버카스텔은 로타르 폰파버의 형제인 요한 폰파버 세대가 설립한 요한 파버 연필 공장과 브라질에 있는 라피스 요한 파버를 인수하였습니다.
1960년 프랑스에 설립한 판매회사를 시작으로 1977년까지 신규 해외지사들을 설립하였습니다. 현재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큰 파버카스텔의 연필공장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1961
- 1961 – 파버카스텔 창립 200주년
1961년 파버카스텔은 전세계적으로 초대된 내빈들 및 3천여명의 직원들과 함께 200주년을 축하하였습니다. 스테인의 사람들도 이 파티에 참여하였습니다. 이 날은 학교휴일로 지정되어 졌으며 어린이들은 화려한 행진을 즐겨 볼 수 있었습니다.
1978
- 안톤 백작은 1978년 대표로 임명되었으며, 같은 해 화장품 산업을 위한 연필을 생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20년 동안 그는 여러 개의 신규 해외지사와 공장을 포함하여 1980년, 세계에서 가장 큰 연필 공장을 말레이시아에 설립하였습니다.
1993
- 기업의 환경의식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서, 브라질에는 연필의 재료에 사용하기 위한 독창적인 숲 프로젝트를 진행하였고, 친환경 수채물감 기술을 개발하고, 친환경 인증 나무판자와 연필제조를 위해 코스타리카에 제조공장을 설립하였습니다. 1993년 파버카스텔은 5카테고리로 제품을 분류함으로써 기업과 브랜드 이미지를 재정립하였고,
2000
- 2000년 3월에는 국제노동기구의 지침에 따라 독일 금속노조와 함께 사회 협약서를 준비하고 전세계적으로 적용할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또한 2003년 7월에 파버카스텔은 기업의 가치를 추구하는 유엔의 ‘글로벌 컴팩트’에 가입하였습니다.
